세계행진단, 철책선에 처음 서다 

 

2009년 10월 16일 (금)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 한국위원회 2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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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행진단 1차 입국자 13명은 김포 용화사(주지 석지관 스님)의 환대속에도착 첫날밤을 보내고 강화 민통선 중립수역을 찾음으로서 한국일정을 시작하였다. 강화지역 세계행진 조직 책임자인 김영애 대표와 이시우 DMZ사진작가의 인도로 민통선 철책선을 따라 북을 바라보면서 행진단은 약 500 미터의 걸음을 옮기면서 이시우 선생이 설명하는 한국의 분단의 아픔에 대한 실제적 상황에 충격과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차내에서 박성용 사무총장은 바로 통일전망대가 있는 양사면 철산리가 자신이 태어난 곳이고 자신의 어렸을 때 상황을 행진단에게 들려 주었다. 남, 북 양쪽 마을 가운데 우뚝솟은 스피커를 통해 상대를 저주하며 대북, 대남 선전을 하던 그 시절에는 정말 북은 괴물이나 무찔러야 할 악한 적으로 이해했고 아무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살았던 침묵의 문화에 대한 것이 그 요지였다. 어린 시절의 추억에 별로 품고 싶지 않았던 그 곳을 수십년 잊고 살다가 다시 평화활동가로 삶이 바뀌면서 자신이 태어난 강화에서 평화의 배띄우기, 세계행진 등의 활동을 하게된 지금의 위치에서 과거의 분단과 증오의 기억들은 상처에서 이제는 치유와 화해를 해야 할 시점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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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의 망향대는 바로 지천인 연백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정규적으로 찾아와 고향을 그리며 이별의 한을 달래는 곳이다. 여기에 모인 세계행진단과 한국위원회 대표들은 함께 잠시 손을 잡고 세계행진의 의미와 한국의 분단에 대한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나누었다. 대표단장인 라파엘은 독일의 분단상황을 기억하며 어리석은 이념으로 인해 진정한 인간됨과 연결을 잃는 이 슬픈 상황이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염원의 결집을 통해 극복되어지고 통일이 되어서 세계행진단이 그 때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하였다. 이행우 고문의 묵념 선언을 통해 서로 손을 잡고 잠시 숙연한 침묵을 보낸 후 전망대 내부로 올라가 강화와 인천에서 온 연백이 고향인 현지 실향민과 대화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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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시우선생을 통해 강원도와 경기도의 DMZ와 한강어귀의 중립수역의 차이를 설명하고 이곳은 정전협정상 민간선박의 자유왕래가 보장된 곳이며 한미연합사의 관할권 논쟁의 부당성에 대한 이유와 한미연합사의 현재의 모순적 기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여러 심각한 토론과 질의 그리고 실향민과의 대화 등을 통해 분단상황의 실제를 목도한 세계행진단은 자신이 한국을 방문한 것이 타당하고 중요함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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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평화통일마당에는 실향민 그룹, 강화 현주민들, 평화와 통일 그리고 지역 자치 운동을 하는 다양한 시민사회 및 종교계 지도자들 40여명이 세계행진단을 맞아주었다. 세계행진단 단장인 라파엘은 한국에 오기까지 이미 8개 국가를 돌며 보았던 각국가의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한국의 분단상황에 대한 아픔에 깊이 공감하였으며 앞으로 UN에 보고서를 작성하여 낼 때 한국의 문제도 제안될 것임을 소개하였다. 이시우선생은 강화중립수역의 분단상황의 현실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으로서 미국에 한미연합사의 현재 역할에 대한 국제적 판단을 얻고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미국에 법적소송의 가능성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논의과정에서 토니 로버슨은 스패너를 들고 철조망을 잘라내는 비폭력직접행동의 제안을, 그리고 저널리스트인 한 행진단원은 글을 통해 한국의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하겠다는 약속도 있었다. 강화에서 평화와 통일운동을 하는 윤여군 목사는 교동의 현실을 설명하고 교동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는 운동에 대한 제안을 하였다. 결국 강화를 통일의 특군으로, 교동을 평화의 섬으로 하자는 선언문이 나왔고 이를 참석자들은 모두 환영하였다.

 

만찬중에 세계행진단 제 2진 9명이 도착하여 장내는 기쁨과 환호로 맞이하며 서로 얼싸안고 춤과 노래를 함께 나누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손을잡고 길게 이어 강강수월래처럼 장중을 돌며 일치와 연대를 다지며 세계행진의 한국일정 첫날은 분단의 아픔과 향수의 기억, 그리고 세계행진단의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염원과 에너지가 분출되면서 이를 위한 일치와 결의들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모임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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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행진단은 단순히 공식 행사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행사가 끝나고 숙소인 김포 용화사로 돌아온 행진단원은 각 사람이 맡은 직임에 따라 그날 일어난 사건들을 요약정리하여 기사와 사진, 동영상을 영어권과 스페인어권에 보내기 위해 두 세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나라의 일정을 확인하고 필요한 준비 모임을 하기 때문에 보통 새벽 1시 이후에나 잠에 들게 된다. 이들의 이러한 에너지와 체력을 보면서 벌써 9나라를 돌면서도 그들이 지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자신들이 해야 할 임무와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헌신 그리고 각 현장에서 맞이하는 환대와 전 지구적인 기대 때문일 것이다.